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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각은 개념에 의존하지 않고 직접적인 앎에 도달한 상태, 즉 자존과 현존으로 들어가는 통로이며 도달 시 사라진다. 하지만 이렇게 언어로만 설명한다면, 자각은 형식에 기대어져 이 또한 개념에 의존하는 꼴이 된다. 결국, 간접적인 앎에 그친다. 자각을 ‘있는 그대로’ 실제 체험하기 위해서는 실재적 방법(호흡, 명상, 요가, 종교, 여행, 공부 등등)이 필요하다. 문제는 이 수많은 방법이 ‘방법을 위한 방법’으로 집착. 즉, 과도하게 의미 부여될 때, 오히려 자각을 방해한다. 따라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는 전혀 중요하지 않다. 나는 방법으로 ‘운동’을 선택했지만, 사실 ‘운동’은 중요하지 않다. ‘운동’의 형태를 빌려온 ‘놀이’다. ‘놀이’의 형태를 빌려온 자존과 현존의 표현이다.

“해마다 수만 명의 사람들이 헬스장, 체육관 등을 등록하고 운동¹을 시작한다. 얼마 지나지 않아 대부분 운동을 그만둔다. 하지만 어떤 이는 한 해 두 해를 넘기고 십 년 이십 년이 지나도록 운동을 한다. 오늘날 누구나 운동을 하지만, 얼마나 운동이 중요한지 깨닫는 이는 소수에 불과하다. 소수만이 운동이 주는 특별한 경이를 체험한다. 바로 이들이 진정한 운동가²가 된다.
이들은 운동의 세계가 얼마나 광활하고 다채로우며 즐거운지 깨우친다. 처음에는 이 세계가 자그마한 금붕어 연못과 튤립 화단이 달린 아담한 유치원 수준인 줄 알았는데, 그 유치원은 이내 공원이 되고 더 넓은 풍경이 되고 대륙이 되고 세계가 되고 낙원이 된다. 그리하여 늘 새로운 마법에 홀리고 늘 처음 보는 색색의 꽃이 만발한다. 또한, 어제까지는 정원이나 공원 혹은 울창한 숲으로 보였던 것이 오늘이나 내일쯤은 경건한 신전으로 다가온다.  수천의 홀과 뜰을 거느린 그 신전에는 모든 민족과 시대의 정신이 깃들어 있어서 끊임없이 새로이 일깨워지기를, 그 각양각색의 다채로운 외적 형상들 속에 깃든 통일성을 발견해주기를 늘 고대한다.
이 무한한 운동의 세계는 모든 운동가에게 각각 다른 모습으로 보이며, 개개의 운동가는 그 속에서 자기 자신을 추구하며 경험한다. 태권도에서부터 아이키도로 나아가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크로스핏을 시작으로 레슬링으로 향하는 사람도 있다.  어떤 이는 요가로 출발하여 타말파 요법으로, 현대 무용을 하다가 펠든크라이스의 가르침으로 나아간다. 이처럼 수천의 길이 울창한 숲을 가로질러 수천의 목적지로 우리를 인도하지만 그 어떤 목적지도 최종은 아니요, 그 너머마다 광활한 세계가 또 새롭게 펼쳐진다. 진정한 운동가는 그런 울창한 운동의 세계에서 길을 잃고 압도될지, 제대로 길을 찾아 자신의 운동 체험이 스스로 자신의 경험과 삶에 소용되게끔 할지는 각자의 지혜나 운에 달려있다.”
– 헤르만 헤세, 독서의 기술 발췌 (원문은 독서¹또는 독서가²)
Author
한얼, 2009~18년 운동 사색 편집
위 글은 초고 및 서론에 해당되며, 계속 확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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